언제부턴가 '공직자'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대통령, 장관, 차관, 기관장 같은 고위 공직자들은 국민 위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우리는 그들이 누가 되는지 관심도, 영향력도 없다고 생각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공직사회에 조용하지만 뚜렷한 변화가 생기고 있습니다. 바로 ‘국민추천제’라는 제도입니다. 국민이 직접 공직자를 추천한다는 이 제도는, 말 그대로 ‘위에서 임명’되던 관행에서 벗어나 ‘국민의 시선’에서 인물을 발굴하는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처음 이 제도가 시행될 때만 해도 "과연 현실성이 있을까?", "얼마나 반영되겠어?"라는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죠. 하지만 10년 가까운 시범 운영과 개선을 거치며, 국민추천제는 이제 고위직 인사에서 하나의 공식 채널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2024년부터는 대상 범위가 더욱 확대되면서, 장차관급 공직자 중 일부가 실제 국민추천을 통해 발탁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국민추천제는 정확히 어떤 제도이며, 우리는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것이 진짜 공직사회의 문을 여는 새로운 키가 될 수 있을까요? 지금부터 천천히, 깊게 살펴보겠습니다.
국민추천제, 왜 생겼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국민추천제는 인사혁신처 주관으로 2011년 시범 도입되었습니다. 당시엔 단순히 '유능한 인재를 국민이 제안하는 창구' 수준이었지만, 점차 시스템화되어 오늘날에는 고위공직자, 정부 위원회 위원장, 공공기관장, 전문위원 등에 대해 실질적인 인사경로 중 하나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이 제도의 취지는 명확합니다. ‘닫힌 인사 시스템’을 ‘열린 인사 시스템’으로 바꾸는 것. 대통령이나 장관, 고위 참모진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던 추천을 국민에게 개방함으로써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나아가 공직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목표입니다.
추천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은 물론이고 단체, 협회, 연구소, 학계 등도 추천서를 제출할 수 있죠. 추천을 위한 자격 제한은 없으며, 인사혁신처 홈페이지 또는 전용 플랫폼을 통해 온라인 제출이 가능합니다. 추천서에는 후보자의 주요 경력, 전문성, 공직 적합성, 도덕성 등을 포함해 구체적으로 기술해야 하며, 심사 과정에서 사실 여부와 역량, 공적자료 등이 엄격히 검증됩니다.
실제로 얼마나 추천되고, 얼마나 반영되나?
제도가 시행된 초기 몇 년간은 추천 건수가 연 100건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되겠어?’ 하는 의심이 많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최근에는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인사혁신처가 발표한 2024년 국민추천제 통계에 따르면 한 해 동안 3,200건 이상의 추천서가 접수되었으며, 이 중 실질 검토로 이어진 건수는 약 900건, 최종 인터뷰와 심층 평가까지 이뤄진 건수는 300건 이상이었습니다.
물론 이 중 실제 발탁까지 이뤄진 사례는 많지 않지만, 2023년부터는 장차관급 5명, 정부위원회 위원장 7명, 공공기관 고위직 10여 명 이상이 국민추천 경로를 통해 임용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특히 환경부, 해양수산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전문성과 실무 경험이 중요한 부처에서는 현장 출신 전문가가 다수 추천되었고, 실제 인사 반영률도 상승하고 있습니다.
사례도 다양합니다. 제주에서 오랜 기간 해녀 생태 보전 활동을 해온 60대 여성 활동가가 해양수산부 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고, 청년 농업인 단체에서 추천한 농업기술 전문가가 농림축산식품부 정책 자문 역할을 수행한 사례도 있습니다. 기존 인사 라인에서는 결코 주목받지 못했을 이들이 국민추천을 통해 공직자의 길로 나아간 것이죠.
왜 이런 제도가 지금 필요한가?
공직자, 특히 고위직 인사는 단지 ‘직책’을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국정 철학과 정책 방향을 반영하는 매우 중요한 절차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상당수 인사들이 특정 학연·지연에 의존하거나 정치권 인맥을 통해 이뤄진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추천제는 공직자 인사의 다양성, 공정성, 그리고 신뢰 회복을 위한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 구조가 급속히 변화하면서 전문성과 실무경험이 풍부한 사람,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인재들이 필요해졌습니다. 관료 중심의 인사만으로는 정책의 현장성과 다양성을 담아내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입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국민추천제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실질적 정책 역량 확보의 통로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직접 추천하고 공직의 일부가 된다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끌어올리는 긍정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공직은 위에서 정하는 것’이라는 오랜 통념에서 벗어나, ‘공직은 나와 관련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시도입니다.
참여 방법은? 나도 할 수 있을까?
많은 분들이 "좋은 제도인 건 알겠는데, 내가 직접 추천해도 되나?", "어떻게 해야 하지?" 라고 궁금해합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은 생각보다 훨씬 간단합니다.
인사혁신처에서 운영하는 국민추천제 전용 웹사이트 또는 통합 행정 포털에서 추천서 양식을 다운로드 받고, 추천하고 싶은 인물의 이력과 공적사항, 추천 사유 등을 작성한 후 제출하면 됩니다. 최근에는 온라인 입력방식도 도입되어 서류 출력 없이도 PC나 모바일로 제출이 가능하죠.
추천대상자는 꼭 유명인일 필요도 없습니다. 본인이 직접 추천서를 써서 '자천'할 수도 있고, 가족이나 지인이 타인의 추천서를 대신 작성해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모든 추천은 공적 확인 절차와 도덕성 검증, 경력 검토를 거치기 때문에 허위 사실을 기입하거나 과장할 경우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정부는 향후 추천서 양식 간소화, 인물 데이터베이스 공개, 추천인 피드백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참여 장벽을 더욱 낮출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참여는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나도 할 수 있다’는 인식입니다.
마무리하며 – 국민이 이끄는 인사 시대를 기대하며
공직자의 자질과 철학은 결국 국가 운영의 성패와 직결됩니다. 그런 인물을 국민이 추천하고, 그 추천이 실제 임명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단지 인사 한 사람을 뽑는 것을 넘어 국민 주권이 실현되는 정치 시스템의 확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민추천제가 완벽한 제도는 아닙니다. 여전히 보완할 점은 많습니다. 추천서 형식의 다양화, 정보 접근성 확대, 추천된 인물에 대한 후속 관리 등 과제가 남아있죠. 하지만 제도라는 것은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참여를 통해 진화하는 것입니다.
이제 공직자도, 국민의 눈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시대입니다. 단지 인사청문회에서 검증받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국민의 손에 의해 선택되고, 그 추천의 배경에 국민적 지지가 있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더 큰 책임감을 부여하게 됩니다.
혹시 여러분 주변에 이런 분이 계신가요? 묵묵히 사회를 위해 헌신해온 사람, 현장의 경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 권력이나 명예가 아닌 사명감으로 공직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인물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추천을 해보세요. 공직은 더 이상 위에서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되어야 하니까요.